김천과하주 이야기

김천을 대표하는 전통명주

전통비법으로 저온 장기발효를 통해 숙성된 술

400여년전 임진왜란(1592년)때 명나라의 원병장 이여송이 김천을 지날 때 그 샘물맛 보고 중국 금릉의 과하천의 물맛과 같다고 칭송하여 이때부터 이 샘을 과하천이라 부르게 되었고, 그 샘물로 빗은 술을 과하주라 하였다. 이후 과하주가 한양까지 알려져 임금께 진상하였으며 김천을 대표하는 전통명주로 전례되어 일본에까지 널리 알려졌다고 한다. 광복 후에는 지역특산물로 가내양조 규모로 명맥을 유지하다 6.25 전쟁 후 자취를 감추었다. 그러다 1984년 당시 김천문화원장 송재성이 과하주의 복원에 성공하여 지금에 이르렀다.

김천 과하주는 경북 김천의 맑은 샘물과 토종멥쌀 그리고 엄선한 곡자원료를 사용하여 전통비법으로 저온 장기발효를 통해 숙성된 술이다. 투명한 황갈색에 고유한 감미와 산미가 있다. 한 여름에도 술맛의 변화가 없고 차게해서 마시면 더욱 좋아 오래전 궁중과 사대부집 등 상류층이 즐기던 고급술이다.

술을 빚는 송강호명인은 농림축산식품부에서 지정한 식품명인 제17호로 지정, 빚은술은 경북 무형문화재 제11호로 지정되어 있다. 김천 과하주를 마신다는 것은 명인이 만든 무형문화재를 마시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이외에도 대한민국 주류품평회, 전국우수농산물 품평회, 한국 전통주류품평회, 녹색지대 농수산물 품평회 등 여러 품평회에서 우수한 평가를 받은 우리 고유의 명품술이다. 

"과하주"의 유래

“김천은 옛날 소관이 상주하는 곳으로서, 옛부터 금이나는 샘이 있든 까닭으로 금천이라 이름함니다, 그 샘물로 술을 빚으면 그 맛과 향기가 극히 아름다왔으며 또한 그 샘을 주천이라  하였으나. 이 지방의 사람들이 금을 채굴하는 고역을 두려워하여 그 샘물을 매립한바 오히려 이제는 그 장소를 알지 못한다고 한다. 다만 김천과하주와 여산, 호산, 춘단주가 일국에 그 이름이 높았으며, 외지 사람들이 금릉사람에게서 그 술을 빚는 방법을 배웠으나 그 맛이 모두 본토주(김천과하주)와 같지 아니하였음은 그 샘물이 타지와는 달리 특이한 신비가 있는 연고라고 한다. 물산은 각기 그지방의 특성에 따른다고 하며, 옛부터 말하기를 김천 과하주는 좋은 술이라 한다” (금릉승람 1702년)

“옛날 이곳에 샘이 있어 그 샘물로 술을 빚으면 술맛이 그럴 수 없고 향기가 좋았다 한다. 그 샘물을「금지천」또는「주천」이라 불러 왔는데 김천은 그 샘으로부터 연유된 이름이라고도 한다. 임진왜란때 명의 원병장 이여송이 이곳을 지날 때 그샘물맛 보고서는 중국 금릉의 과하천의 물맛과 같다고 칭송하여 이때부터 이 샘을 과하천이라 부르게 되었고, 그 샘물로 빗은 술을 과하주라 하였다, 그후 과하주가 서울에 까지 알려져 임금님께 공물로 전해졌다, 과하주는 그 당시부터 이 고장의 전통명주로 전례 되어, 해방전 일본에까지 널리 알려진 이 지방의 특산물이되었다. (금릉향토사 1969연)

" 400여년전 임진왜란(1592년)때 명나라의 원병장 이여송장군이 이곳을 지날 때 그샘물맛 보고 중국금릉의 과하천의 물맛과 같다고 칭송하여 이때부터 이 샘을 과하천이라 부르게 되었고, 그 샘물로 빗은 술을 과하주라 하였다. "

김천에서 40여년간 의료 사업과 문화사업에 헌신하시든 (고)송재성옹께서 과거 일제시대, 김천주조(김천시 감호동소재) 정문앞에서 의료사업을 개업, 본도가(김천주조)를 래왕하시며 익혀두셨든 「과하주」의 양조법을 재현하여 이 지방의 전통 특산물로 그명맥을 이어 보려는 뜻에서, 1982년부터 당시 과하주의 기능보유자 (망)조무성(권응칠로부터 전수)와 과하주 의 양조법을 복원하였으며, 또한 과하주 유래와 전래법의 관련자료를 학계 권위자들의 고증과 조사를 통하여, 과거의 제조비법을 복원, 전수하게 되었다, 그후 국세청 기술연구소와 여러대학, 교수들의 기술지원하에, 과학적인 제조방법을 정립하여, 맛과, 향이 옛것과 같은 과하주를 재현하게 되었으며, 이 자료를 토대로, 학계의 전문가와 지역 향토학자들의 지원하에 과하주를 무형문화재(경북제11호,1987년)와 전통식품 명인(제8호,1995년)로 지정받게 되었음니다.
현재  경북 김천시 대항면 향천리 791-1에 제조장을 건립하여, 고인의 이남(송강호)이 후계자로 지정(무형문화재 경북제11호 및 식품명인 제17호). 과하주의 기능전수와 이 지방 특산 민속명주로 그 명맥을 유지하면서 제조 운영에 전념하고 있습니다.